
이웃집 소가 밤새 울어댄다. 듣는 사람 마음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소가 저리 애절하게 우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말 못 하는 소가 의사 표현하려면 큰 소리로 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한두 번 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울다 지쳤는지 새벽녘부터는 소리가 많이 줄어들어 아예 쉰 목소리다.
소가 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밥을 안 줘도 운다. 그러나 밥 안 줬다고 계속해서 울지는 않는다. 보통은 한두 번 울어봐도 밥을 안 주면 주인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해는 짧고 가을일이 바쁘다 보니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늦게 집으로 향하는 주인 발걸음은, 자기 배고픔보다 먼저 소들 걱정에 우사부터 달려간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소들은 벌써 멀리서 달려오는 주인 발소리를 듣고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 구수에 머리를 들이밀고 큰 눈망울을 굴리는 모습에 주인 마음을 더 바쁘게 한다. 이윽고 사료 푸대를 뜯어내 먹이를 한 바가지씩 던져주노라면 긴 혀를 날름거리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나를 위해 주인은 하루 종일 일하느라 자기 허기보다 먼저 소먹이부터 챙겨주는 배려를 알고 있기나 한 듯이…….
소가 우는 다음 이유는 암내가 났을 때다. 송아지가 1년쯤 되면 덩치가 어미소만해진다. 그럼 여지없이 어른 소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그중에 수놈은 시도 때도 없이 저보다 덩치 큰 소들에게 다가가 뿔로 밀어제치기도 하고 올라타기도 한다. 암놈은 거기에 맞춰 같이 비벼주며 사랑 표현을 드러낸다. 그 표시를 시작으로 울어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번식본능의 작업이지만 그들만의 사랑법은 지칠 줄을 모른다. 처녀 암소는 3일 정도의 발정기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긴 사랑을 나눈다.
오늘 우는 소의 울음은 그 정도가 아니다. 사랑보다 더 애절하다. 막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밤이 깊어진다. 이제 지칠 만도 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들려온다. 한 번 울고 몇 타임이 지나면 또 울어대고 또 울어대고……. 그 울음은 웬만한 시골 농부라면 다 아는 울음소리다.
농촌의 소는 집안 살림의 큰 적금통장이었다. 1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새끼를 낳아주고 젖을 빨던 어린 소가 어느덧 여물을 먹기 시작하면 주인의 마음은 한결 넉넉해진다. 바닥에 똥이라도 묻을세라 어미 소는 연신 핥아대고……. 털이 반질반질하게 윤기 나는 송아지를 보노라면 주인은 한시도 우사 곁을 떠나질 않는다.
아직 새끼 털이 없어지기도 전인데 목줄을 새로 채워 새벽녘에 어미 소를 끌고 우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주인이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 졸랑졸랑 그 뒤를 따라가는 송아지. 모든 게 처음 보는 것이다. 자동차가 지나는 신작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사람들이 모여있는 우시장에 다다른다. 여기저기 울어대는 소 울음들. 이때가 되면 송아지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어미 소 곁에 바짝 붙어 있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불안해지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몇 번의 경험이 있는 어미 소는 연신 송아지를 핥아대며 안심시킨다. 이윽고 몇 사람이 어미 소도 살펴보고 송아지 등짝도 만져보다 ‘그놈
잘 생겼다’ 하며 엉덩이를 때려댄다. 화들짝 놀란 송아지가 옆의 소 칸으로 달아나지만 금세 어미 소 곁으로 되돌아온다. 자신을 낳아주고 젖을 먹여주고 핥아주고 품어준 어미 소 곁을 떠날 수 없다. 주인이 낯선 이와 몇 마디 주고받다 지폐 뭉치를 받으면 새끼 소의 목줄이 풀린다. 영문을 모르던 송아지가 허둥거린다. 주인은 송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잘 ~ 살어라”
세어 받아 호주머니에 들어온 돈뭉치, 그리고 팍팍한 살림살이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집안의 이런저런 대소사들……. 떠나보내는 송아지에게 미안함도 있지만 우선 아들 등록금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에 주인은 소의 고삐를 세차게 잡아끌고 우시장을 벗어난다. 그 순간부터 소 울음은 시작된다. 주인은 어미 소가 뒤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갈 때보다 더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몇 걸음을 지나 어미 소가 우렁차게 한 번 큰소리를 내어 울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송아지는 영락없이 ‘매~앰’하고 응답을 보내오고 그럴 때마다 주인은 더 세게 고삐를 당겨댄다. 어느새 어미 소 코뚜레가 비틀어져 있다. 코가 찢어질 듯 아프지만 어미 소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울어댄다.
다른 때 같으면 모처럼 장터에 나와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고 천천히 길을 청해도 될 텐데 오늘은 그럴 여유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애지중지 키운 자식 같은 송아지를 식구부터 살리자고 팔아넘기고 돌아오는 미안함도 있고 고맙기도 하고……. 아버지는 그렇게 소를 키워 어려운 살림을 일구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주인 손에 끌려 되돌아오는 어미 소가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로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며 외마디처럼 연신 울어대는 어미 소. 그래도 주인은 흐뭇한 표정이다. 오로지 호주머니에 들어온 송아지 판 돈이 집안 살림에 큰 보탬이 될 터이니…….
외양간에 매어진 소가 더 구슬프게 울어댄다. 한 번 울고 나면 우시장에서 마지막 헤어질 때 응답했던 송아지의 ‘매앰’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듯하다. 사람의 귀에도 그리 들리는데 어미 소의 귓전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어미 소가 더 크게 울어댄다. 여지없이 송아지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하고 그렇게 밤이 새도록 울어댄다. 이틀이 지나고 삼 일째가 되니 소 울음소리가 잔잔해진다. 그 대신 목이 쉰 소의 숨넘어가는 소리만 가끔 들려올 뿐이다.
“이제 그만 울어”
주인이 안쓰러운 듯 새벽 소죽을 준비하다 미안한 마음에 쌀겨 한 바가지 듬뿍 끼얹는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니 아버지가 이웃집 우사로 향한다. 밤새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아봐야 한다. 다행히 주인이 먼저 나와 소밥을 주고 있다.
“어떤 소가 그렇게 밤새 울었어?”
“아이고 죄송해요. 어젯밤 술을 좀 한 탓에 탈출한 송아지를 글쎄 제 어미한테 안 넣고 다른 칸에 넣었지 뭐예요.”
소 우리 안을 들여다보니 밤새 울던 어미 소가 제 새끼를 연신 핥아대고 있다. 궁금했는지 건넛집 할머니도 우사까지 달려 나와 무심코 한마디 던진다.
“제 자식도 버리고 집 나간 며느리도 있는데 저렇게 새끼 찾는 소가 사람보다 나으이.”
밤새도록 울어댄 소 울음소리가 손자 키우는 할머니 마음만 더 심란하게 했던 모양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림살이는 다 거기서 거기다. 나라 살림을 맡은
이도 모두 오직 제 책임을 다해야 하건만 일이 제 뜻대로 안 풀린다고 억지 부리고 떼를 쓰듯 민심을 거스르던 일이 엊그제다. 오히려 민심이 지도자를 더 걱정하는 웃지 못할 세태가 하루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