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상가 공실률이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도시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이승우 기자)
세종시의 상가 공실률이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도시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이승우 기자)

[충남일보 이승우 기자] 세종시가 행정도시로서 급속히 성장했음에도 전국 최고 수준의 상가 공실률이 지속되며 도시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표방하며 출범한 세종시는 지난 12년 동안 인구가 10만 명에서 40만 명 안팎으로 늘며 외형상 성공한 신도시로 꼽힌다.

정부 부처와 국책연구기관 이전, 수도권 분산이라는 정책 효과가 더해지며 상징성도 확보했다.

다만 도심을 직접 돌아보면 상권의 현실은 기대와 크게 다르다. 불이 꺼진 상가, 수년째 비어 있는 1층 점포, ‘임대·매매’ 현수막이 걸린 건물과 인적이 거의 없는 거리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와 세종시·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세종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5% 이상으로 전국 평균(약 18%)을 크게 웃돈다.

특히 시·도의회가 공동 조사한 나성동·대평동·어진동 일대는 일부 건물이 공실률 80~90%에 달하며 사실상 ‘유령 상가’가 된 곳도 있다.

정부세종청사 인근 오피스 건물 역시 입주율이 매우 낮아 ‘껍데기 건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폐업 건수도 급증해 최근 몇 년간 나성, 대평, 어진동 등 3개동에서만 1500건 안팎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됐다.

보람동에서 8년 동안 공인중개업을 해온 한 업자는 “올해 들어 상가 계약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무척 상황이 좋지 않다”며 “임대료와 관리비, 전기료 같은 고정비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오르고 있는데 상가쪽 수수료 수입은 ‘0’에 가까워 아파트 관련 수수료로 버티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은퇴 후 월세 수익을 기대해 상가를 분양받은 분들이 많은 상황인데 공실이 길어져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한 채 상가를 넘기는 사례가 급증했다”며 “세종 상가는 더 이상 투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판단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솔동의 또 다른 중개업자는 “세종에 거주하는 젊은 층이 원하는 시설들이 별로 없다보니 대전으로 나가서 소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종에서 도는 돈이 줄어들어 해당 매출만으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신생 업소가 몇 달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 상권 침체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구조가 깔려 있다.

먼저 계획도시 특유의 ‘선(先) 공급, 후(後) 수요’ 구조가 상가 과잉을 불렀다.

아파트 단지마다 스트리트 상가가 따라 붙고 BRT 도로변에 상가 건물이 대량 공급됐으며 나성·어진·소담동 중심상업지구까지 한꺼번에 조성됐다.

아울러 주상복합 하부 상가는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상업용으로 구성되면서 실제 인구 규모와 소비 여력에 비해 상업 면적이 지나치게 많아졌다. 그 결과 상권이 자리 잡기 전에 임대물량이 시장에 한꺼번에 풀려 공실이 장기화되는 구조가 고착됐다.

또한 초기 분양가 책정 자체가 지나치게 높았다. 공무원 특별공급 열풍으로 아파트가 3.3㎡당 1000만 원대일 때 상가 1층은 3.3㎡당 3000만 원대까지 분양된 사례가 많았다.

18평 규모 상가 한 칸이 8억~9억 원 수준이었고 상당수 수분양자가 5억~6억 원의 대출을 안고 들어왔다. 임대수요가 예상보다 적자 공실 기간이 길어졌고 원리금 부담이 투자자에게 집중됐다.

세종시에서는 지난 7월 30일 공실 문제 해결을 위해 업종 제한 등을 완화했으나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사진=이승우 기자)
세종시에서는 지난 7월 30일 공실 문제 해결을 위해 업종 제한 등을 완화했으나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사진=이승우 기자)

소비 패턴도 상권 침체에 영향을 줬다. 지역 상인과 주민들은 ‘세종 시민들이 소비는 대전에서 한다”는 말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쇼핑은 둔산·유성, 회식과 주류 소비는 대전 중심가로 가는 흐름이 강하다.

출장객·방문객이 머물 숙박 인프라도 부족해 체류형 소비가 형성되지 못하고 낮에는 관공서로 출근했다가 저녁에 외부로 이동하는 ‘베드타운형 상권’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대평동 종합운동장·KTX 세종역·중앙공원 2단계 조성 등 주요 인프라 사업이 잇따라 지연되거나 수정된 점도 기대했던 배후 수요를 약화시켰다.

세종시는 공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7월 30일 지구단위계획을 대폭 완화했다.

BRT·수변 상가에는 그동안 제한이 많았던 제1·2종 근린생활시설, 병·의원, 미용실, 학원, 실내 체육시설 등을 새로 허용하고 수변 상가에는 업무시설·교육연구시설·의료시설 일부를 추가로 입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또한 대평동·소담동의 일반상업지역 8필지를 대상으로 소형 호텔·호스텔 등 관광숙박시설 입지를 허용해 출장·방문 수요를 지역 상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 차량 진출입로에는 차량용 고강도 블록 사용도 의무화했다.

더불어 세종시의회는 나성동·대평동·어진동 일대를 ‘세종형 창업지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나성동은 ICT·AI·디지털콘텐츠 등 기술 기반 창업특구로, 대평동은 공예·체험·수변 마켓 중심의 문화 창업지구로, 어진동은 생활연극·소극장 기반의 예술 창업지구로 조성하는 로드맵이 논의되고 있다.

일부 공실 상가는 창업보육센터(BI센터)·소규모 공연장·공유 오피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규제 완화만으로는 현재 상황을 개선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임대료가 여전히 고점에 묶여 있어 창업 수요가 진입하기 어렵고 인재 확보와 지원 정보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창업기업이나 예비창업자들의 세종 창업 의향은 높았지만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임대료 부담·인재 확보 어려움·지원제도 정보 부족 등을 꼽았기 때문이다.

도시·부동산 전문가들은 세종의 상가 공실 문제를 도시 경쟁력 전반에 대한 구조적 경고라고 분석한다.

지역 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세종은 외형 성장은 이뤘지만 산업 기반이 약하고 소비·문화·야간경제가 함께 다져지지 않아 상권이 취약해진 측면이 크다”며 “이번 규제 완화는 필수적인 첫 단계지만 임대료 구조 개선·청년·혁신기업 유입 전략·대전과 차별화된 야간·문화 상권 기획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 부처 추가 이전과 도시 인프라 확충이 장기적으로 결합돼야 세종이 ‘그림자 행정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창업·혁신 중심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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