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호주의 수도는 인구 40만 명의 캔버라다. 인구 500만이 넘는 시드니나 멜버른을 제치고 캔버라가 수도로 결정된 사연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 호주 연방이 수립되면서 가장 큰 두 도시였던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에 수도 쟁탈전이 벌어졌다.

경쟁은 치열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유치전이 장기화하면서 갈등 양상도 빚어졌다. 결국, 호주 연방의회는 두 도시의 중간에 있는 캔버라를 수도로 결정했다. 호주 원주민 언어로 캔버라는 ‘만남의 장소’를 의미한다.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었지만, 이름부터 이미 수도가 될 운명이었는지 당시 캔버라는 척박한 황무지였다.

호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도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인공도시 건설이 목표였다. 도시 기반부터 거주 환경, 무엇보다 한 국가의 수도 기능을 위해 철저한 계획도시로 재탄생했다. 도시의 밑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미국 시카고 출신 월터 그리핀이다.

그는 도시 중심에 인공 호수를 만들어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가 확대하도록 설계했다. 그의 계획대로 캔버라 중심에는 인공 호수가 조성됐고, 그의 이름을 따 ‘그리핀 호수’로 명명했다. 자연과의 공존에 성공해 캔버라는 ‘숲이 우거진 수도(Bush Capital)’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연과 환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캔버라는 2023년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가 발표한 스마트시티 지수 평가에서 스위스 취리히, 노르웨이 오슬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24년에도 전 세계 140여 개 도시 중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지수 산정은 도시의 경제적·기술적 강점과 이러한 요소가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문제의 해법을 제공하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캔버라는 깨끗한 환경과 청정에너지에 스마트 조명, 폐기물 관리, 교통관리 시스템 등을 통해 도시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마트시티 이니셔티브가 확실한 셈이다.

지난 4일부터 5박 7일간의 일정으로 직원들과 함께 호주 캔버라와 시드니를 다녀왔다. 첫 방문지 캔버라는 명불허전이었다. 호주의 수도이자 자치 준주(準州)를 관리하는 ACT(Australian Capital Territory)가 추진하는 정부의 ‘디지털 캔버라’ 정책을 살폈다.

ACT는 행정서비스 플랫폼을 철저하게 시민의 입장에서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호주의 최고 과학자들로 구성된 AAC(호주과학아카데미)가 적극적으로 조언과 자문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 행선지인 시드니에서는 스마트 농업 현장인 어반그린시드니(Urban Green Sydney)를 방문했다. 시드니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 유휴 공간이 생기자, 이곳 일부를 도심 새싹채소 수직 재배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채소를 재배한다. 최신 기술을 통해 최종 생산물의 양을 늘리기보다 신선도 등 높은 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건물 지하의 유휴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해 조성하고, 전직 요리사가 창업해 식당에서 실제 수요가 많은 새싹채소를 재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캔버라와 유성은 다르다. 캔버라는 국가의 수도이고, 유성구는 기초지자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인구 규모가 비슷하다. 지속 가능한 스마트시티를 추구하는 방향도 거의 같다. 캔버라는 AAC와 호주국립대 등이 있어 과학 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KAIST와 충남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이 소재한 유성도 그렇다.

5박 7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에 올랐다. 각오를 다졌다. 이번에는 배우러 갔지만, 머지않아 유성을 배우러 오게 만들겠다고. 방동저수지가 그리핀 호수처럼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을 청했다. 상상은 설렜고, 잠은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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