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90년도 신문사에 입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중앙지는 물론 지방지 역시 50대1에서 1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니 언론고시라 불렸다.
신문은 세로 형태였고 한문을 병행했다. 입사 시험은 1차는 국어, 영어, 상식, 2차는 논술, 기사 작성, 3차는 면접으로 기억하는데, 국어 과목에서 한자나 고사성어를 공부하느라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기사는 65자와 200자 원고지로 작성했는데, 무슨 담봇짐도 아니고 항상 앞 주머니에는 플러스펜, 뒷주머니에는 취재 수첩과 원고지를 넣고 다녔다. 특히 기사 작성한 원고지가 비를 맞거나 물에라도 젖는 날이면 다시 쓰느라 입이 바짝바짝 탔다. 강산이 세 번 이상 변한 지금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수습 교육도 시쳇말로 빡셌다. 교육은 6개월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도제식이어서 사스마와리(경찰 출입)를 돌 때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를 헷갈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했던 기사를 작성했던 수습기자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다.
당시 언론사는 많지 않았지만 보도 경쟁이 치열했다. 사망 사건이 나면 무조건 사진을 구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아 가기 일쑤였고 특종을 하면 회식이고 물을 먹는 날(낙종)이면 편집국이 싸늘했다. 올해의 기자상이나 특종상, 시말서나 사유서에 이르기까지 당근과 채찍이 혼재했다.
촌지도 횡행했던 시절, 촌지 거부 운동을 주도한 업보로 물 좋은 경제부 기자 시절 출입처에 청첩장을 안 돌렸더니 별종 소리 들었던 적이 바로 엊그제 같다.
시대적 상황은 암울했다. 매년 5월이면 대학가는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같은 시대의 젊은이들이 시위대와 전경의 이름으로 갈라져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한 현장을 취재하고 나면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언론 역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편집권의 독립 문제 등이 그 시대의 화두였다.
2000년대 초쯤 원고지 시대는 물러 가고 노트북이 지급된 것으로 기억된다. 10년 정도 원고지를 쓰다가 노트북을 익힐려니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고 지금도 독수리 타법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 펜과 취재 수첩과 원고지를 넣었던 호주머니는 비워졌지만 대신 등 뒤에 노트북 가방이라는 새로운 담봇짐으로 대체됐다.
지금의 언론 환경, 특히 지방은 여러면에서 열악하다. IMF를 겪은 이후 경영이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광고나 외적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결과적으로 양질의 기사는 갈수록 빈약하고 처우나 복지 수준 역시 체감지수가 낮다.
설상가상으로 일인 인터넷 신문도 우후죽순으로 가세하면서 언론의 질적 수준은 예전에 비해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널린게 기자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기레기’도 상존하고 있는 것 또한 언론의 자화상이다.
그렇다고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이 변할 수는 없다. 각 분야의 정보 전달과 대안 제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라는 기능이 선순환될 때 결과물은 그대로 그 사회에 올곧게 투영된다. 여전히 정론직필을 노래하고 권력과 자본이라는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 시대와 사회는 바로 선다. 그 치열함을 담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고민과 정진의 자세가 필요함은 불문가지다.
※새해부터 우명균 내포취재본부장의 칼럼을 신설합니다. 34년 취재기자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행정,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단상과 이야기들을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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