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국이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지난해 말 계엄 선포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조만간 선고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곧바로 조기 대선이 시작돼 여야는 선거 모드로 돌입한다. 탄핵이 기각이나 각하되면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면서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될 개연성이 크고 민주당 역시 의석수를 앞세운 입법권을 동원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늠할 ‘탄핵 선고의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이번 사태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는 파란만장했다. 하야, 살해, 투옥, 자살, 탄핵에 이르기까지 '잔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구조적으로 대통령제에 따른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제왕적 권력 집중과 밀접한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권력구조 개편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도 반복되는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고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연유 때문이다.
역대 정치사에서 권력 구조 개편 논의의 중심에는 내각제론자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꼽을 수 있다. JP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지난 1990년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민정당과 공화당, 민주당 등 3당 합당에 참여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김종필 후보 연합(DJP 연합)도 역시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지만 DJ가 정권을 잡은 뒤 합의는 파기됐다. JP는 2002년 자민련 총재 시절 대권에 대한 꿈도 품었다. 내각제를 주창하며 대망을 가졌지만 여론의 힘을 얻지 못하고 뜻을 접어야만 했다..
JP는 "내각제 완성을 위해 정열을 불태우다 서산에 지는 노을처럼 아름답게 퇴장할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결국 미완에 그친 채 정계에서 물러났다.
개헌 논의는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매우 활발했다.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은 신년사에서 “새해에는 대한민국의 더욱 튼튼한 미래를 위해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공론화에 물꼬를 텄다.
많은 정치인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여야 110여 명이 참여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까지 구성하고 개헌안 마련에 머리를 맞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력을 잃었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의원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의 개헌 필요성이 논의됐지만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정치권의 행태가 발목을 잡았다.
대선 때마다 여야 주자들은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집권하면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누리다가 임기 말에야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 들곤 했다. 국민적 동의를 얻기란 만무한 일이었다.
과거의 시대적 상황과는 다르게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현행 헌법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가 헌법 개정을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을 지낸 여야 정치 원로들이 개헌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내고 있다.
초당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대통령과 여소야대의 국회가 정면 충돌을 반복하는 현행 헌법의 폐해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정치 양극화에 따른 국론 분열과 국정 마비에 대한 위기감으로 개헌 찬성 여론이 60%를 넘고 있는 것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현행 헌법이 1987년 이후 4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변화된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승자독식 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선 개헌이 절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대통령 ‘잔혹사’의 전철을 밟아 또다시 1인 지하의 권력의 늪에 빠져 막강한 권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지 모른다. 그 폐해는 계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번 사태에서 체감했듯이 온전히 국민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이젠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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