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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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 뒤편에는 시원스레 녹색의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있다. 스탠드도 갖춘 국회 운동장은 국회 관계자나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돼 각종 운동 경기나 다채로운 행사가 치러진다.

지난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국회 사무처나 도서관 등 국회내 주요 기관들간에 국회 사무총장배를 놓고 매년 정기적으로 이 곳에서 축구 경기를 벌였고 여야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의원축구단도 축구 시합을 하곤 했다.

이 즈음에 국회 출입 기자들로 구성된 국회기자축구단도 발족돼 국회의원축구단과 가끔씩 경기를 벌였다.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무리하게 운동하다 목발을 짚기도 했고 60대 후반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골키퍼를 보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승패와 상관 없이 경기가 끝나면 같이 목욕을 하고 국회내에 있는 함바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특히 회기중에 여야간에 득달같이 싸우다가도 이런 자리를 빌어 화해도 하고 소통하는 것을 보면 언론의 입장에서 쌍수를 들어 반겼다.

이 곳 국회 운동장 주변은 매년 봄이면 윤중로 벚꽃 축제가 열린다. 흐드러진 벚꽃을 보기 위해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명소로 꼽힌다. 화사한 봄날에 국회 운동장을 찾은 어린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깔깔거리는 소리는 벚꽃과 어우러지면서 격무에 지친 사람들에게 힐링이 됐다.

평화로운 그 곳, 국회 운동장에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계엄군의 헬기가 내려 앉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중무장한 계엄군은 헬기를 타고 운동장에 내려 국회에 진입했다.

국회에는 헬기 12대가 동원됐고 15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됐다. 이들은 권총과 기관단총, 저격용 총 등 각종 화기를 실탄과 함께 지참했다.

계엄군은 계엄 해제 요구안을 막기 위해 국회에 유리창을 깨며 진입했고 이런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대한민국은 패닉에 빠졌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도저히 믿기지 않은 살풍경한 모습이 목도된 것이다.

이날의 장면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선포한 비상계엄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휴교령과 장갑차, 통금과 불심검문, 계엄군, 소총과 장착된 서슬퍼런 대검, 가마니에 덮여진 시신, 5월 광주의 희디 흰 이팝나무와 찔레꽃 등이 오버랩되면서 밤새 내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날 밤 발표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단호하고 섬뜩하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포고령을 내렸다는 궤변이다.

포고령의 주요 내용을 보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 금지 ▲가짜 뉴스, 여론 조작, 허위 선동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의 계엄사 통제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 금지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 48시간 내 복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고 계엄법에 의해 처단하도록 돼 있다. 처단의 의미는 ‘처치하거나 처분함’을 뜻하는데, 국민을 대상으로 처치하겠다는 살벌한 표현까지 동원됐다.

당시 국회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저항이 계엄군에 의해 무력화되고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무산됐다면, 지금 포고령의 굴레 속에 계엄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그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천만다행으로 국민적 저항과 국회 의결을 통해 계엄이 조기에 해제되고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리 수순에 들어 갔고 내란혐의에 대한 수사도 진행중이다.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치밀하고 계획적인 계엄의 전모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적 트라우마로 또다시 각인된 이번 계엄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와 평화의 국회 운동장에 계엄군의 헬기가 언제 또다시 내려 앉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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