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대 대선 국면인 지난 2002년 9월 중앙선대위 출범식에서 선을 보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신행정수도 공약은 정국을 술렁이게 할 정도로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이날 발표된 충청권의 행정수도론은 다른 공약을 압도할 정도로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선 승부를 가르는 상수(常數) 역할을 했다.
노 후보는 대통령 취임 이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기구 구성과 특별법 제정, 입지 선정 등 행정수도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관습 헌법을 위반했다"며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최대 고비를 맞게 된다.
민심이 사나워지자 정부와 정치권은 대안으로 후속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공포했다. 지금의 세종시가 행정도시로 자리잡게 된 모태(母胎)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2007년 대선에 당선된 뒤 “세종시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충청권 출신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빼들었다. MB 정부는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경제·교육도시로 수정하려고 했지만 충청권의 강력한 투쟁과 여야 많은 의원들이 원안 추진을 고수하면서 수정안은 국회에서 결국 부결됐다.
이후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과 함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입주하면서 현재 행정도시인 세종시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시작점으로 20여 년의 만고풍상을 거친 지금의 행정도시는 행정수도 완성의 측면에서 아직도 진행형이다. 청와대와 국회, 일부 정부 부처가 이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 길이 먼 미완의 행정수도인데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부산에 청사까지 얻어 놓고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해수부 이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대통령이 약속한 행정수도 완성과 해수부 이전은 전면 배치된다. 행정수도 완성은 대통령실과 국회, 모든 중앙부처의 세종 이전을 의미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세종에 자리잡고 있는 해수부를 이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법적인 근거와 공론화 과정도 문제다. 관련법에 따르면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중앙행정기관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개 부처를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의 세종시 입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해수부를 이전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은 어떤가. 세종시가 지금의 행정도시로 자리잡기 까지 반대론자들이 제기한 헌재 판결을 수용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내는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쳤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해수부 이전은 충청권과 인천, 시민·사회단체, 해수부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공론화나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속전속결로 추진되고 있으니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업무의 효율성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부처 간 유기적인 협업은 시너지 효과를 배가한다. 해수부가 북극항로 개설 등의 세계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의 중추 기관이 입지한 세종시에 위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한 매년 국정감사 기간에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업무의 비효율성 문제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해수부 이전은 특히 정부 부처 이전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최근 다른 지역에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나 산자부와 중기부의 이전을 언급하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후보들이 지역 발전을 이유로 또다시 부처 이전을 공약화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행정수도 완성은 고사하고 정치적으로 ‘나누기’의 대상이 되지나 않을지 의구심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파했던 행정수도 완성에 대한 지론은 간단 명료하다. 수도권의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정부 부처와 청와대, 국회를 이전하자는 것이다.
작금 논란이 되고 있는 행정수도 완성을 논하려면 그의 균형발전 철학에 답이 있다. 아직 미완의 행정수도에 뺄셈을 하지 말고 덧셈의 정책을 펼치라는 의미다. 행정수도 완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얻으려면 그 답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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