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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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수선했던 1980년대 대학시절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廣場)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암울했던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이념을 소재로 한 소설이어서 화제작으로 평가됐다.

대강의 줄거리는 해방 직후에서 6·25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남북한의 이념 대립과 그 사이에서 파멸해 가는 '이명준'이라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남한의 대학생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밀실은 넘치나 '광장'이 없는 현실에 좌절하다가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또한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받는 각종 집단주의를 위한 광장은 있으나 개인의 '밀실'이 없는 곳임을 느끼고 회의감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벌어지고 공산군 장교로 참전한 명준은 포로가 돼 남한도 북한도 아닌 자유를 찾아 중립국 행을 선택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당시로서는 다소 이색적인 소재여서 친구들과 갑론을박(甲論乙駁) 토론을 벌이며 밤늦게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국면에서 노정(露呈)된 진영간 갈등은 40여년 전에 읽었던 이 작품을 소환케 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을 지난 4일 파면했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로부터 122일만,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계엄 이후 4개월 넘게 진영 간 갈등은 탄핵 국면을 거치며 전례없이 극심하게 전개됐다. 상대를 향해 원색적인 색깔론과 적대적 표현을 서슴치 않으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치 갈등은 세대와 남녀, 지역 갈등, 국론 분열로 번졌다.

어디 그 뿐인가. 법원, 헌재, 언론 등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루는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에 대한 공격도 감행됐다. 대학가든, 거리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편이 갈리는 심리적 내전 양상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 줬다.

세계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강대국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흑백 논리와 진영 논리에 갇혀 대척점에 서 있는 작금의 현실은 오늘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혹자들은 역사는 진보한다고 설파했지만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런 생채기를 안은 채 탄핵 국면이 종식되면서 목하 대선 국면을 맞고 있다. 국민의힘은 경선 4강 대진표가 확정되면서 최종 후보로 선출되기 위한 후보들 간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100% 일반국민 여론조사로 진행된 1차 경선과 달리 2차 경선은 당원 투표 50%·국민 여론조사 50%로 순위를 결정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순위자 간에 최종 경선이 치러진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경선 레이스가 후반부로 접어 들었다. 네 차례 열리는 당원 대상 지역 순회 경선은 충청권과 영남권을 거치며 반환점을 돌았고 호남권과 마지막 수도권 경선만 남겨 두고 있다. 각 당의 후보들은 경선 과정을 거쳐 조만간 최종 확정되고 6월 3일 대선이 치러진다.

대선은 한 나라를 이끌고 국정을 수행하는 지도자를 뽑는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역대 대통령들의 파란만장했던 잔혹사를 상기하면 그 함의는 중차대하다.

지금 한국은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사회통합 등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과제 앞에 서 있다. 경기침체에다 고물가, 청년 실업, 부동산 불안정까지 겹쳐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놓여 있다.

난국을 타개하려면 국가적인 위기 수습은 물론 극단적 분열과 대결 정치 청산에 대한 비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연지사 국민 통합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는 가로 막힌 도로를 걷어 치우고 통합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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