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3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거의 16년 정도 국회를 출입했으니 적지 않은 시절을 정치 현장에서 보냈다. 이 시기는 15대 대선에서 18대 대선에 해당되고 국회는 15대 국회부터 19대 국회에 이르기 까지 격동의 한국 정치사의 한 복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에 따른 단상과 편린들은 한 편의 파노라마와 같다.
다소 우스갯 얘기지만 당시 전국 8도에서 모인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는 정치적 경력과 내공의 잣대는 국회의사당 기둥의 개수를 제대로 아느냐의 여부였다.
국회의사당에는 앞쪽과 뒤쪽 각 8개와 양 옆 4개씩 모두 24개의 기둥이 있다. 24개는 곧 24절기를 의미하고 우리나라 전국을 상징하는 전국 8도(道)에 맞춰 전면에 기둥 8개를 배치하도록 설계됐다. 국회의사당의 국회의원들이 1년 24절기 내내 항상 전국 8도의 국민들을 생각하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24개의 기둥 위에 얹힌 원형 돔 지붕은 각기 다른 의견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원과 같이 하나의 결론으로 통합된다는 의회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를 아는 기자들은 연식이나 짬밥(짬바)이 꽤 있는 측에 속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초짜나 풋내기로 취급됐다.
처음 국회 출입하던 그 해 1999년은 호남의 김대중 대통령과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 김종필 국무총리의 DJP연합의 공동정부 시절이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에게 야권 대통령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대신 공동정부를 구성해 국무총리는 자민련이 맡고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양당 간 합의의 결과물이었다.
양당 연합은 김대중 후보의 당선과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끌어 냈지만 결국 연결고리인 내각제 합의가 파기되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됐다.
공동정부에 이어 참여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로 권력의 축이 이동하는 사이 15대 국회는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에서 19대 국회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의 3당 체제가 구축됐지만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양당 체제를 맞게 됐다.
정치권은 과거 3당 체제에서 현재의 양당 체제로 변화됐지만 2002년부터 정치권을 관통했던 대표적인 현안으로 충청권의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참여정부의 대선 공약에서 시작된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충청권을 전례없이 하나로 결집시키는 촉매가 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관습 헌법을 잣대로 위헌 판결이 나와 중대 고비를 맞았지만 이후 정부 부처를 이전하는 내용의 행정도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지금의 행정도시가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당시 위헌 판결에 따른 충청권의 상실감이나 일부 기득권 세력의 유령 도시론,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발의됐던 행정도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던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후일담이지만 충청권 의원들의 단식 농성, 여당내 한 충청권 의원은 같은 당 수도권 의원들과 수정안을 놓고 사이가 틀어져 화장실에서도 인사도 안했다는 얘기나 세종시에 뼈를 묻겠다는 충청권 의원, 공주·연기 지역의 행정도시 예정지를 비롯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신설 등 단독과 특종 기사를 토해 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행정도시가 변모에 변모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착근되는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과거 15대 국회부터 반추해 보면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는 혹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전제할 때 과연 “정치는 더디지만 진보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작금의 정치 현실이 여야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고사하고 편 가르기식 극단의 정치, 사당화 논란, 민생정치 실종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은 오히려 퇴보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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